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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야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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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야르 왕국(아랍어: حِمْيَر Ḥimyar, 사이하드어: 𐩢𐩣𐩺𐩧𐩣 Ḥmyrm)은 고대에 예멘의 남부 고원 지역에 있던 세력 또는 이들이 지배하던 지역의 이름이다. 본래 카타반 왕국의 일부이다가 기원전 110년 독립 세력을 이루었다.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제국의 기록에는 기원후 1세기 무렵 Homerite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며 키타반의 영역이였던 아덴만 유역의 서남부 고원지대에서 여러 부족이 연합을 형성한 것이 이 왕국의 시작이였다.

3세기 중경에 인접국이자 국력이 성장하고 있었던 에티오피아 지역의 악숨 왕국의 영향력을 받고 있었다. 일샤리프 형제가 공동통치하던 사바에 비해 힘야르는 당시 열세였기 때문에 홍해 교역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 남아라비아의 세력유지를 꾀하고자 했던 악숨왕국은 사바의 공격을 받는 힘야르를 지원했으며 당시 힘야르의 왕 역시 그가 제위하는데에 악숨 왕국의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4세기 후반부터 유대교를 신봉하던 힘야르 왕국에서 6세기 초에 동로마 제국의 영향 하에서 기독교에 우호적인 야누프 왕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에 우호적인 왕의 등장은 유대교를 신봉하던 세력들에 의한 반발을 불러와 518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다. 이러한 박해로부터 기독교인들을 구출하고 선대 통치자의 지배라는 역사적인 근거에서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던 악숨의 칼렙 왕은 하얀 지휘관을 보내 전쟁에서 승리하고 기독교인인 야푸르를 왕으로 임명하였다. 다시 522년에 유대교를 신봉하는 유수프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면서 악숨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던 힘야르의 기독교인들을 공격하였고, 특히 나지란에서 기독교인들의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2차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에 대해 칼렙 왕은 525년에 직접 전쟁에 나서 승리한 후에 그곳에 기독교인 왕을 세우고 악숨인들에 의한 지배를 확립하였다. 이후에 힘야르 왕국은 독립적인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악숨의 조공국이 되었으며, 악숨의 영향력 아래 기독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힘야르가 기독교 국가가 되자 531년에 유스티누스 황제는 같은 기독교 국가들인 악숨과 힘야르와 연합하여 사산조페르시아를 공격하여 인도양 무역로를 확보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과거 예멘 및 남부 헤자즈 지역에 존재했던 베두인계 왕국으로 성경에도 나오는 사바 왕국을 정복하고 한때 메카와 메디나 지역까지 세력을 떨칠 정도로 강성했다. 그러나 예멘 지역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지원을 받은 콥트교를 믿는 에티오피아 악숨 왕국이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제국의 기록에는 기원후 1세기 무렵 Homerite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며 사바(Saba') 왕국의 오랜 중심지였던 마리브(marib/ma'rib)가 아닌 자파르 인근에서 초반 정복활동을 벌였다. 기원전 25년경 쇠락해 가던 사바를 정복한 뒤 기원후 200년경에는 카타반(Qataban), 300년경에는 하드라마우트(Hadhramaut/Ḥaḍramūt)를 정복하고 280년경에 사바의 마지막 잔존세력에 막타를 가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사실 인과관계를 따져보자면 카타반과 사바는 2세기 초반에 힘야르 본토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카타반을 하드라마우트가 정복했는데 힘야르한테 얻어맞고 카타반을 다시 토해내고 사바를 힘야르가 재정복한 뒤 하드라마우트마저 힘야르가 정복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두 나라가 떨어져 나가지만 않았으면 그냥 하드라마우트 하나만 굴복시켜도 될 일을 100년 넘게 온갖 뻘짓을 해 가면서 겨우 수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원후 380년경에는 국왕 아부 카리브(Abu Karib)가 유대교로 개종하면서 비유대인 국가가 유대교를 믿는 상황이 되었다. 옆 나라인 에티오피아 악숨 왕국은 339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한창 콥트교로 발전하던 중이었지만 북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오히려 로마 제국의 기독교도 사산조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도 아닌 유대교를 믿은 덕분에 서로 적대하는 두 제국 사이에서 정치적 및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는 농업 외에도 중계무역으로 먹고 살던 힘야르의 상업 발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기원후 390~400년경에는 북부 아라비아(정확히는 헤자즈 지방)에서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군대를 보내기도 했으나 현지인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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